본 블로그는 화면 해상도 1024 X 768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행복뜨락Reposeidea飮食百科한국의 소리 100選잊혀가는 것들雜學多識慶州崔氏중년이후의 건강HumorFlash 영상Food material명상음악시배달문장배달Flash 효과imageaccessory
Quick Menu ▒ 맨끝으로!! ▒

부불삼대(富不三代)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습니다. 부와 권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무려 300년동안 9대 진사와12대에 이르는 만석군을 이룬 명가가 있으니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명가 경주 최씨 가문을 이르는 말입니다. 각종 매체에서 명가(名家)관련 프로그램에 절대 빠지지않는 명문가로 이름을 떨친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가장 간단한 답은 문중에 내려오는 제가(齊家)의 가훈 '육훈'(六訓)과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修身)의 가훈 '육연'(六然)으로 알수가 있을 듯 합니다. 요즘 사회면을 얼룩지게하고, 존경받지 못한 졸부에 지나지않는 재벌들이 있기에 경주 최부자 문중의 '뜻'은 우리에게 더더욱 깊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의 솟을 대문입니다. 내남면 이조리에서 이곳으로 옮기게 된것은 최진립의 8세손 최기영(1768-1825)이 주위 형제와 사촌들의 시기, 불화를 견디다 못해 현 교동으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 최언경(1743~1804)이 지금의 터에서 미리 살고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인근에 경주 향교가 있어 교동 또는 교촌으로 불린 곳이었습니다. 이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경주 최부잣집으로 알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처음 이곳에 집을 지을때에도 바로 옆 경주 향교의 유생들의 반발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향교 보다 땅의 높이 단을 낮추는 방법으로 그들을 설득하여 이 고택을 지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교동 경주 최씨 고택의 안내판, 경주 최씨 고택 즉, 최부자집은 중요민속자료 제 2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간혹 아이들이 교촌 이라는지명 때문에 교촌 치킨이 처음 생긴곳이냐고 질문을 합니다. 교촌 치킨의 교촌 또한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곳의 교촌과는 같은 말입니다만, 치킨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참고로 교촌 치킨은 대구에서 1991년 시작되어 유명한 체인점이 되었고 경부고속도로 오산 IC인근에 그 본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참고하세요!

경주 최부자의 마지막 만석군으로 전 재산을 교육에 투자 사회에 환원하므로써 대미를 장식한.. 독립 유공자이신 최준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솟을대문과 행랑채를 사랑채에서 본 모습입니다. 요즘 드라마의 여파로 항상 북적거리지만 다행이 사람들이 없을때 담을수가 있었습니다.

이곳에 오면 반드시 읽고 가야 할 이야기... 이 뿐만이 아니고, 고택의 이곳 저곳의 모든 글들은 읽어보고 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볼수있는.. 오래전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드나들었던 사랑채의 모습입니다. 사랑채는 2006년 복원된 것입니다.

1970년 11월 화재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시절의 모습, 이후 2006년 8월 경주시에서 5억 여원의 예산을 들여 37 평 규모의 사랑채를 비로소 복원하여 우리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타까운것은 수많은 시인 묵객들과 명사들이 이곳에 들렸다가 남긴 시판과 편액들도 화재로 소실되었을것 이라는 것입니다.

구한말 영덕출신의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이곳으로 피신을 왔었고 면암 최익현 선생도 의병과 함께 이곳에서 며칠동안이나 묵었다고 합니다. 의친왕 이강은 사랑채에 엿새를 머물며 이 집주인인 최준에게 ‘문파’ 라는 호를 지어주었고 또 육당 최남선과 위당 정인보도 1년 이상장기간 사랑채에 머물며 ‘동경지’라는 책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특이한 사건은 스웨덴의 황태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루이즈 왕세자비가 신혼 여행중 이곳에서 머물며 서봉총을 발굴한 일은 매우 유명한 일화입니다. 발굴후 '서봉총'이라는 이름도 이곳에서 지어진 이름이라합니다. 한국 전쟁시 구스타프 6세 아돌프 국왕은 서봉총 발굴시 이곳에서 머물때 여성공간이라 보지못했던 안채에 대한 호기심으로 전쟁시 간호사를 파견함과 아울러 이곳에 들러 안채와 부엌을 촬영하고 오라 명할 정도로 경주 최씨 집안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채에 오른 예지,영호 그리고 아이들 엄마! 왼쪽 들문이 보이는 안쪽 방에는 모 방송국에서 촬영왔던데... 어떤 프로그램인지...

둔차(鈍次)는 최준의 친부(親父) 최현식의 호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듯 드러나지 않고 버금감’이라는 뜻입니다. 1등이 못되어도 2등을,수석이 아닌 차석을 하더라도 만족하라는 의미로 볼수가 있는데 항상 첫번째는 오래 가지 못하고 그것을 유지하고자 많은 무리수가 뒤따르게 되니 버금감으로 만족하라는 의미가 내포 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최고만을 고집하고 지향하는 세태를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는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항간에 유행하는 유행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바로 이런 현실을 꼬집은것이자 처세가 아닌가 봅니다.


둔차(鈍次) 편액 아래에서 예지와 영호!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의미를 공부하게 되겠지요.

대우헌(大愚軒)의 대우(大愚)는 마지막 만석꾼인 문파(汶坡)최준(崔浚)의 조부(祖父) 최만희의 호라고 합니다. 큰대(大)어리석을 우(愚).. 이런 호에서 풍겨나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대우헌(大愚軒) 편액 아래에서 예지!


대우헌 아래에서 영호! 모자와 입은 옷이 꼭 '만주에서 꼭 말타고 개장사하는 사람(?)' 같다는....ㅋㅋㅋㅋ

용암고택(龍庵古宅)현판글씨는 최진립장군의 14대 종손이며 충의당(忠義堂)의 주인 최채량(崔採亮)의 글씨라고 합니다. 최채량(崔採亮)선생의 아호 역시 '어리석은 산(愚山)'이라고 합니다. 둔차(鈍次), 대우(大愚), 우산(愚山).. 집안의 아호 마져도 부족한 겸손(!)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사랑채 안 문,창살이 정겹게 보입니다. 이런 멋진 고택의 멋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가 중학교 다닐때 까지만 해도 이런 멋진 고택에서살았었는데.... 왜 그때가 그렇게 기억날까요?

명가의 상징인 사당, 유교 사회에서의 가문으로 뿌리 내린 집안에서는 거의 필수적으로..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 문중의 '사당'입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 황태자마저도 못보고 갔었던 그 안채의 모습입니다. 훗날 한국전쟁시 황태자의 명에 의해 파병된 간호사들에게 안채를 촬영해 가지고 오라는 명이 있었다는데... 황태자의 궁금증은 해소가 됐는지 궁금하군요. 여전히 고택은 어딜가더라도 안채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아직도 살고 있는 곳이니 예(禮)를 다하는것이 오랫동안 고택을 유지해 온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합니다. 사랑채를 돌아 안채로 들어서도 내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양반고택이 다 그렇듯이 외부공간과 단절된 공간이니 그러한가 봅니다. 그래서 특이하게 안채로 들어서는 동선이 지그 재그로 들이가 도록 되어 있습니다.

경주 최씨 가문 부의 상징 곳간채... 800석이 들어간다는 맞배지붕의 곳간채는 이제 7개의 곳간 중 하나만 남았습니다.

        ● 집안을 다루는 지침인 제가(齊家)의 가훈 '육훈'(六訓)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둘째,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넷째,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다섯째,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여섯째, 시집 온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 자신을 지키는 지침 수신(修身)의 가훈 '육연'(六然)
          자처초연:自處超然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대인애연:對人靄然 남 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
          무사징연: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
          유사감연:有事敢然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
          득의담연:得意淡然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실의태연:失意泰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

아마도 300년동안 만석꾼 집안을 유지한것은 바로 이 '육훈'과 '육연'으로 이해가 될것 같습니다. 현재의 재벌가들은 이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반드시 되새길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이탈리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메디치 가문도 200년 이상 그 부의 명맥이 이어지지 못하였다고 하니.. 부를 이루는 것도 어렵지만 부를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300년 이상 부를 유지해온 최부자 가문에서 가지고 내려온 '육훈과 육연'에 의한 정신무장은 가문을 유지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만석꾼 최준(오른쪽)과 그의 동생 최윤(왼쪽), 평생을 가슴에 담고 살아왔다는 어느 노스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물은 분뇨(똥거름)와 같아서 한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마지막 최부자 최준(崔浚)은 호(號)가 문파(汶坡)다.호(號)는 의친왕 이강이 이 집에 며칠 머물면서 지어준 것이라한다. 1884년 경주에서 태어난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은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상해 임시정부에 평생 자금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였다. 1947년에는 대구에 대구대학을 설립하여 재단이 사장으로서 현대교육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독립운동 사실이 왜경에게 발각되어 만석꾼 재산을 거의 날려버린 최준은 남은 전 재산과 살고 있던 경주 및 대구의 집까지 처분하여 대구대학과 계림학숙을 세웠는데 이 두 학교가 합해져서 후일 영남대학교가 되었다.<시민뉴스>

일제시대 백산상회를 설립한 백산 안희재와 최준의 유명한 이야기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난후 임시정부로 부터 돌아 온 뒤 김구 선생은 많은 돈으로 도와준 최준을 자신이 거주하는 경교장으로 초청하여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때 김구 선생이 백산 안희재을 통해 자신이 헌금한 돈을 적은 장부를 받아보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바로 전달 된것을 확인하곤 최준은 멀리 의령 땅 백산의 무덤을 향해 대성통곡을 했다 합니다. 이로 인해 1990년 아주 늦게나마 국민훈장 애족장을추서 되면서 그 화려했던 만석꾼의 이야기는 끝이 나게 됩니다. - 문파 최준의 이야기 : http://blog.naver.com/jw1405/3240218

최준선생은 1970년 돌아가시면서.. '나라가 독립이 되었으니 근심이 없고, 만석군의 재산도 없으니 도둑 걱정도 없다'며.. '대문을 활짝 열어 두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합니다. 그런데 그 큰 뜻을 저버린 이들은 마지막 남긴 후학양성의 기틀을 두리뭉실 가로 채더니 이제는 땅 문제까지 관여하여 편히 잠든 선산 마저 옮겨질 형편이 되었었다 합니다. 같은 나라 사람으로 살면서 그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드라마 '명가'는 현 '영남 대학교'와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근혜,와 관련된 이 가문을 다루면서 이명박의 박근혜 때리기가 아니냐는 의혹도 있습니다만, 분명 중립적 입장에서 아닌것은 아닌것이고 잘못된것은 잘못된것이니..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다룰지 더 두고 볼일입니다.

지금의 후손들은 뒤늦게 선생이 독립 유공자로 인정을 받고, 얼마되지도 않은 20여만원의 연금을 타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크게 자랑스러워 했다 합니다. 그전에는 이 나라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했어야 할 일을 뭣하러 유공자 신청하느냐며 만류했던 후손들.. 역시 '명문가' 다운 면모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울러 큰 부끄러움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 최부자 최준(崔浚)은 호(號)가 문파(汶坡)입니다. 호(號)는 의친왕 이강이 이곳에서 머물면서 최준에게 지어준 것으로 그 내력을 적은 액자가 사랑채 안에 걸려있습니다.

횃불을 피워놓는 뜰에 세운 기둥모양의 대(臺)로 정료대(庭燎臺)라고 합니다. 서원 또는 고택 사당에서 자주 볼수 있는데 경주 지역에는 신라시대 폐사지의 석등 석재를 사용하여 정료대를 만든곳이 많이 보입니다.(옥산서원의 경우) 하대석과 8각 간주석 또한 제짝이 아닙니다. 상판은 근간 새로 만들어 올린것으로 보이는데... 솔직히 없는니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석재상에서 석탑의 옥개석을 구입해 올려 놓은 듯 합니다.

인촌 김성수가 탐을 내어 고려대학교에 두자고 했었던 연화문 석조, 석조의 모서리만 연꽃무늬 처럼 만들어진 불국사의 석조 정도는 남아있을 정도로 귀한것이라고 합니다. 뒤의 석재는 석탑재.


인근에 있는 또 다른 석조!

사당으로 들어가는 쪽에 있는 석조물.. 석탑으로 알고 있지만 석탑은 아니고 맨 아래는 건물의 초석이고 그 위 기둥은 건물(정자, 창고)의석기둥으로 보이며 연화문이 있는것들은 석등의 상대석 또는 하대석이고 팔각기둥 또한 석등의 간주석으로 보입니다.



건물의 초석을 유심히 보면 그시대의 것이 아니라는것은 알수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시간과 돈과 인력이 많이 드는 초석 가공을 금했다 합니다. 그래서 다른 여타의 고택을 보면 초석은 자연석에 그렝이질로 나무기둥을 세운곳이 많습니다만 이곳은 경주라는 특성상 흔한 신라시대의 초석을 충분히 구할수가 있었을것입니다. 하물며 이곳 자체가 설총을 낳은 요석궁터이고 지척에 반월성이 있으니 이러한 석조물 구하기는 더더욱 쉬웠을것 입니다. 경주 인근의 고택(양동마을,독락당,옥산서원)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볼수 있습니다.

경주 교동 법주는 현 기능보유자인 최경의 10대조인 최국선이 조선 숙종때 임금님의 수랏상과 장을 담그는 염장을 관리하는 사옹원에서참봉으로 있을때 배운 기술이라고 합니다. 이로부터 시집온 며느리들에게 물려져 300년동안 가문의 비주로 전승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중의 사정과 정치적인 문제로 밀주로 치부되어 양조법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다가 이 집에서만 그 대를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안동에서 유명한 안동소주 또한 밀주로 간주되어 큰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주는 한번쯤은 그런 경우를 당했다고합니다. 그러나! 교동법주는 1986년 11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 86-다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동 법주에 대한 안내판 입니다. 경주에는 매년 봄에 '술과 떡 축제'를 성대하게 열고 있습니다. 그때 전국의 전통주는 거의 다 이곳에서전시 판매 되는데(근간에는 경상북도 지역의 전통주만 한다더군요.)약간의 맛을 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맛을 다 봤지만 교동법주는 단연 전통주 중에서 최고 라고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또한 교동법주를 저의 집안 제주(祭酒)로 사용한지도 10년이 넘습니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교동법주는 이곳에 직접와야만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통(냉장보관)에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아니면 교동 법주를 살수도 없습니다. 또한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 맛이 변할까 하여 여전히 소량 생산 및 판매만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이 경주에 살다보니 자주 접할수 있는 그런 행운을 누리는가 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다는 '경주 법주'는 70년대 교동법주 맛에 반한 박정희 대 통령이 '더 많이 만들 수 없냐'고 지시해 모 업체에서 지금껏 경주법주라는 상표로 유사제품을 대량으로 쏟아내고 있는데 그 맛과 깊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할수 있는 정도.... 맛보지 못했으면 말을 하지마세여~!

대문을 들어서면 각종 교동법주와 한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역시 교동 법주는 냉장 보관이겠죠? 경주의 명물로는 황남빵과 더불어 교동 법주를 꼽는데 경주 시민들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고종 황제의 진상품으로 오르기도 했고, 수많은 명사들이 맛을 보기를 원했으며 그 맛을 위해서라면 먼길도 마다하지않고 찾아온 기라성 같은 위인들이 감탄했던 명주 였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최부자 가문의 가양주(家釀酒)이기도 하니 어찌 이곳에 와서 맛보고 가지 않을수가 있겠습니다. 가격은 1병당 30,000원~40,000원 사이 일 것입니다. 생각 보다양이 많습니다.


교동 법주 만드는 장면을 걸어뒀습니다. 판매는 보이는 곳 안쪽에서 구매 할수가 있습니다.


교동 법주를 만드는 이곳 역시 최씨 문중의 고택으로 보입니다. 보이는 건물은 안채 건물!

경주 최씨 고택 앞에는 요석궁이 있습니다. 한정식으로 유명한 곳인데 옛부터 전통요리로 명성이 있어서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도 들린곳이고 지금도 각국의 대사 또는 전,현직 대통령 장관 등등 VIP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꽤 오래전 요석궁 앞쪽에 그 유명한 명차 롤스 로이스(Rolls Royce)가 한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봤는데... 이곳 사장님의 차라는 이야기도 있고, 이곳 손님의 것이라는 이야기도있고.. 여럿이 그 롤스 로이스 주변에 몰려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모터쇼가 아닌 일반 길거리에서 롤스 로이스를 본 것은 저도 그것이 현재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차를 받을 만큼 명성이 아니면 절대 안내준다는 롤스로이스.. 최부자 가문을 생각해보면 내려온 부와 가문의 명성을 생각해 볼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부자 가문'이라면 충분이 가질 자격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 그런데 요즘 그 '롤스 로이스'를 도통 볼수가 없네요~ 사진은 그때 본 롤스로이스의 모습인것 같은데...확실치는 않습니다. 롤스 로이스 '실버 고스트' 구형으로 보입니다.

롤스 로이스의 앰블렘 실버 레이디로 불리는 'Spirit of Ecstasy'그리고 파르테논 신전을 상징화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롤스 로이스의 문장!


요석궁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곳은 원래 마지막 최부자인 문파 최준의 동생 '최윤'의 집 이라고 합니다.

이곳 한정식은 반월정식 20,000원에서 계림정식 30,000원, 안압정식 50,000원, 포석정식 70,000원, 요석정식 100,000원 가격으로 한정식을맛볼수 있습니다. 사진은 요석궁 대문의 현판!

단, 1인분의 가격이니 두사람이 가장 싼 반월정식만 먹는다 하더라도 40,000원이 되는 셈입니다. 가격이 좀 쎈 편이죠! 모든 메뉴는 부가세 10% 가산되니 참조하세요! 그리고 가격 변동이 있을지도 모르니 홈페이지 방문은 필수! http://www.yosukgung.com/




이용하기 까다로운 요석궁 대문의 안내문...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것이겠지요.

요석궁의 내부 모습입니다. 사랑채뿐만 아니고 마당 여러곳에 초석이 보입니다. 이 초석들은 해방후 도주하던 일본인들이 훔쳐 달아나는 것을 부산까지 쫓아가 되찾아 온것인데 다시는 훔쳐가지 못하도록 마당에 박아놓은것이라고 합니다.

내부의 건물들은 춘향목(적송)으로 자재를 사용했으며, 건물 내부는 많은 시간과 인력을 동원하여 경복궁과 운형궁 복원에 참여한 장인들이 전통방식 그대로 수리 복원 한것이라고 합니다. 충남 보은의 '선병국 고가'의 '사랑채'를 만들 때도 궁궐 목수들을 데려와 잘 대접하여 지금의 멋진 모습이 되었다죠? - 선병국 고가: http://blog.naver.com/jw1405/68009232

어느 기자가 최부자의 현 후손(최염)에게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냐고 하자 'BMW'를 타고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역시 부자는 다르구나' 하고 기자가 감탄할 때 그는 "차 없이 지낸 지 꽤 됐다. BMW는 버스(Bus), 지하철(Metro), 걷기(Walk)의 줄임 말"이라며 웃었다고 합니다.

경주 최씨 고가를 둘러보고 나서 꼭 들려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월정교' 입니다. 월정교는 지금 복원으로 분주한 모습입니다. 벌써 상판까지 올렸군요.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가 됩니다. 월정교는 최부자 고택 들어가는 입구 앞 남천에 있습니다.

월정교의 복원 모형 입니다. 복원된 모습의 상상만으로도 즐거워 집니다. 복원 관련 말들이 많지만 그냥 방치하는것 보다는 이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더이상 연구해 봤자 지금보다 더 정확한 모습을 유추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놔둔다는것은 무책임한 방치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경주 최씨 고가의 주변 모습입니다. 재매정과 사마소, 월정교, 경주 향교와 계림, 반월성이 주변에 있습니다. 연계된 답사를 하시면 알찬 여행이 될것이라고 봅니다. 주변에 놋전분식이라는 맛집이 있습니다. 막걸리와 잔치국수가 일품인곳입니다. 유명인사들이 자주 들린다는 '요석궁'에 비하면 시골틱하고 수더분한 내부시설이 형편 없는 곳이지만 소박한 막걸리와 반찬, 음식들의 맛은 제법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가 경주 최부자의 흔적을 찾으려면 먼저 내남면 이조리의 충의당, 그리고 용산 서원을 찾아 보고 교동 경주 최씨 고가를 찾아보는게 정석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참조하세요!

출처 : http://blog.naver.com/jw1405/98746838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람들은 그가 속한 사회의 지배층 인사들에게는 일반인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기대가 충족될 때 우리는 상류 계층 사람들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는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진정한 상류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면서,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곧잘 인용되곤 한다. 이 말은 본래 '귀족은 귀족다워야 한다'는 프랑스 어 속담 Noblesse oblige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금은 사회의 지도적인 지위에 있거나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도덕적·정신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말의 한글 표기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었고, 지난 4월에 열린 '정부 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 위원회'에서는 많은 논의 끝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적기로 최종 결정을 하였다. 이 말의 프랑스 어 발음은 [n bl s bli ]이다. 논란이 되었던 [ ]는 rouge(루주), George(조르주) 등의 예에서처럼 프랑스 어 표기법에 따르면 '주'로 적히게 된다. 따라서 Noblesse oblige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적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 말은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적어 온 관행이 있으므로, 이것을 전혀 무시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자료 검색을 해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사용된 웹 문서는 수 백 건씩 검색이 되는 데 반해, '오블리주'로 표기된 것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동안 이 말에 대해 특별한 어원 의식 없이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관용적으로 표기해 온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외래어 표기에 있어서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문제이다. 즉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원칙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는 오랫동안 쓰이어 이미 표기형이 굳어진 외래어는 그 관용 표기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Noblesse oblige의 한글 표기와 관련한 쟁점은 표기 원칙에 따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적을 것이냐, 아니면 관용을 인정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적을 것이냐 하는 문제로 압축된다.
그런데 이 말이 국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국내 주요 백과사전이나 국어사전 등에는 이 말이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언론 연구원의 자료를 조사해 보니, 이 말이 신문에 등장한 것은 1990년 무렵이었다. 당시 사용된 한글 표기는 신문에 따라 '노블레스 오블리즈',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지'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97년을 전후해서 이 말의 쓰임이 갑작스럽게 증가하게 되고, 또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표기형으로 통일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표기형이 굳어져 사용되게 된 것은 채 10년이 못 된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굳이 어원적 근거가 없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인정하기보다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외래어 표기 원칙에 맞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진 직후에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던 한 신문에서는 당장 표기를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바꾸었다. 이미 여러 회째 연재 중이던 기사의 제목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아마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언어생활을 바르게 이끌어 가기 위해 국가의 어문 정책을 충실히 따르는 태도를 보인 그 신문사의 자세는 매우 믿음직하게 여겨졌다

.
글 :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연구원
출처 : www.korean.go.kr/nkview/nknews/d_200205.html




맨위로!!

저작자 표시
신고
사업자 정보 표시
모래들 농장 | 최봉환 | 경남 양산시 주진동 377 모래들 농장 | 사업자 등록번호 : 621-91-34120 | TEL : 055-365-7430 | Mail : kalefarmer@daum.net | 통신판매신고번호 : 웅상출장소 제191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
Posted by 약초 농부
이전 1 ··· 15914 15915 15916 15917 15918 15919 15920 15921 15922 ··· 25093 다음

農夫가 전하는 알라딘 추천도서 ( sponsor 광고 )


▒ 늘푸른 모래들 kale 農場 ▒
   
EVERGREEN MORAEDLE KALE FARM




▒ 건강 채소를 주문하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
▒ 맨위로!! ▒
▒ 글쓰기 ▒
▒ 관리자 ▒

▒ intro ▒
▒ rss ▒

▒ 맨끝으로!! ▒

티스토리 툴바